theQ. 할매는 잔소리 대마왕


인고의 22시간...
궁딩이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
자다깨다 자다깨다를 몇번이나 반복을 해도 창밖의 풍경은 변하질 않는다
하지만 이까짓 22시간 버스쯤이야 참을 수 있다
산티아고 숙소에 가면 한식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22시간 만에 밟아보는 땅은 별다르지 않다
다만 몰골이 좀비스러워질 뿐이였다
나방이와 난
숙소를 찾기 위해 조그만 쪽지를 읽어본다

Cerro blanco 지하철역 하차, DOMINICA 449번지
머리속에 주소를 입력하고 출발이다

산티아고에 머물게 되는 한인민박집은 할매네집이다
뭐, 별다른 숙소 이름은 없다
홈페이지도 없다
단지 여행객들의 입소문에 의해 알려진 할매가 운영하는 민박집이다
이곳에 다녀간 몇몇 여행객들이 평하는 할매민박집 장점 중 하나!

"밥을 많이 준다!" 

이다...
이건 뭐 머슴새끼들도 그지새끼들도 아니고 밥 많이 준다고 좋다하나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럽여행과 달리 남미여행은 언제나 배가 고프다...
씨발 매일매일이 뽀요,까르네,뽀요,까르네,뽀요,까르네...
뽀요의 뽀자만 들어도 토나올것같다...
뽀뽀의 뽀는 좋아! 헤헤

나방이와 내가 할매네 민박집을 주저없이 선택한 이유

"밥을 많이 준다!"

였다...
하지만 할매민박집을 다녀간 여행객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괴담도 들려왔다

"할매 김치찌게 끓여서 손님들이 남기면 그냥 다시 냄비에 넣어서 다시 끓여서 준대!"

"밤10시되면 2층에서 못내려오게 쇠창살 문을 쇠사슬로 칭칭 감아놓아서 불나면 다 타죽을지도 모른대!"

  "문을 잠가놓는 이유가 숙박비 안내고 도망갈까봐 그런다지?"

김치찌게 재탕하면 어떠랴!
불에 타죽으면 어떠랴!

"밥을 많이 준다!"

는데...

메히꼬D.F 이후로 지하철을 처음탔다
감회가 새롭다
동양인 좀비 두명이 칠레 지하철을 누빈다
드디어 Cerro Blanco역 에 도착~!!
이제 DOMINICA 449번지를 찾아보자
그나저나 배고파 미치겠다...

하지만 쉽게 찾을거라 생각했던 할매네집은 좀처럼 보이질 않는다
그도 그럴것이 여지껏 작은 마을에 익숙해진터라
넒어진 대도시에서 주소하나만 가지고 집을 찾기에는 수동 인공지능 네비게이션이 버벅거린다

동양인 좀비 두명이 한 시간 가까이 헤맨다
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정확히 아는 인간들은 없다
사실 서울 한복판에서 다짜고짜 주소들고 번지수 물어보면 정확히 가르쳐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래도 갑자기 짜증난다
배가 고파졌기때문이다
괜히 뒤쳐져 오는 나방이에게 짜증을 부린다

"빨리와 이시키야!"

" ... "

별반응이 없으니까 더 열받는다 -_-;;;

나중에 알았지만  지하철 역에서 굉장히 가까운 곳이였다
무조건 사진 속의 주유소를 찾으면 된다
주유소를 끼고 저 멀리 산이 보이는 쪽으로 쭈~욱 직진이다!
 



물어물어 겨우 찾아낸 할매네집...
한번 벨을 눌러도 반응이 없자
왠지모를 다급한 마음에 몇 번이고 벨을 눌러댔다
드디어 현관 문이 끼리릭 열리고
부시시한 할매의 모습이 보인다
반갑다!!!
정겨운 할매의 모습...하지만,

" 그만 좀 눌러대~!!!! "

혼났다...-_-;;;
다짜고짜 소리를 빽 지르신다


조그만 정원에는 유기농 상추가 심어져 있다
상추쌈이 먹고 싶어졌다...


간만에 시식하는 가정식 식단이다
미친듯이 먹느라 사진이고 나발이고 생각도 안났다
두 그릇이나 먹었다

" 얘는 무슨 그지새끼도 아니고 체하겄다! 천천히 먹어 이놈아! 몇 일 굶었냐! "

할매는 처음 내 몰골을 보더니
어디서 고생고생하고 굴러왔길래 몰골이 이모냥이냐며 혀를 끌끌차셨다 
그렇게까지 하면서 여행이 하고 싶으냐며 또 다시 혀를 끌끌차셨다

밥을 너무 많이 먹은 걸까
22시간 동안 제대로 못 누워서 침대에 미치도록 눕고 싶은데
누워지지가 않는다!!!
사슴을 삼킨 보아뱀마냥
정말 꿈쩍할 수도 없다...
한시간동안 앉아서 멍때리며 소화를 시키고 나서야 드디어 누울 수 있었다
행복하다...
이렇게 밥을 많이 먹다니... 
 

부엌 옆에는 작은 실내마당이 있다
주로 흡연하는 장소이다

" 담배 좀 작작펴 이놈아! "

할매는 잔소리 대마왕이다
무엇을 하던 할매의 잔소리는 피할 수 없다
밥을 많이 먹으면 많이 쳐먹는다고 잔소리
밥을 남기면 조금 쳐먹는다고 잔소리

피할 수 없다면 즐겨야 한다
하지만 젊은 학생들 대부분은 할매의 초강력 잔소리 필살기를 견디지 못하고
일정보다 빨리 할매네 집을 뜬다

난 간만에 듣는 잔소리라서 정겹다
그래 일주일 정도면 견딜 수 있어!
할매는 내가 미워서 그러는게 아니야


다음날 동네 산책을 하고 집에 들어오니 할매가 주방에서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다
이 코끝을 자극시키는 매콤달콤한 냄새의 정체는 무엇일꼬!!!!

엄마야...
이건 꿈에서 그리고 그리던 떡볶이가 아니더냐...
눈물이 날려고 한다
서둘러 카메라를 꺼내 아름답고 위대한 할매의 모습을 담기로 했다

할매만세다!



아~돼지꿈을 꿨나?
이게 왠 호강이야!!!!!!!!!!!!!!!!!!!!!!!
할매집에서 떡볶이를 먹었다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어본적이 없었다

틀림없이 할매는 날 이뻐하는거다...
나방이는 할매가 자기를 이뻐한다고 착각에 빠져있다
불쌍한 넘...할매가 이뻐하는건 난데~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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