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Q.  J씨의 마지막 쪽지


지하철을 타고 센트로에 나가보기로 한다


아우다마 거리 중심에 있는 아르마스 광장에 도착했다
지금까지의 다른 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깨끗하고 안정되어 있는 광장의 모습이 왠지 어색하다
마치 유럽의 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다


아르마스 광장에서 게일 눈에 띄는 대성당은 1541년 지어졌지만
화재와 지진으로 무너져 다시 재건립되었다


싼티아고 거리를 걷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커피대신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 할 수 있다


Mote con Huesillo(모떼 꼰 우에시요) 이라고 하는 요건 우리나라 식혜나 수정과 같은 전통음료다
더운 싼티아고 날씨를  잠시 잊게 해주는 시원한 쥬스와 쫀득쫀득한 옥수수알갱이~!


할매네 집 독방에는 혼자 머물고 있는 조용한 남자 손님이 한 명 있다
J씨

" 저 냥반은 무슨 사업 때문에 왔다는데 통 모르겄어...말도 없고...아침도 안 먹고 누구 만난다고 일찍 나갔어. "

몽롱한 정신에 밥 한 숟가락 뜨고 있는 나에게 할매가 혼잣말을 하신다
혼잣말이니 대꾸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솔직해지고 싶다
사실 할매한테 삐쳤다

어제 교회 목사님이 할매집에 방문을 했는데 점심을 드시고 가셨다
목사님 밥상에는 계란 후라이가 있는게 아닌가!
순간 너무 먹고 싶었다...계란 후라이가...
할매한테 계란 후라이 해달라고 떼 쓰다가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 주는대로 쳐먹어!!!! "


-_-;
계란 후라이 하나로 상처를 받는 내 자신이 한심하지만 먹고 싶은건 먹고 싶은거다...

속상한 계란 후라이 이야기는 그만하고
다시 원래 이야기로 돌아가자

J씨는 한눈에 보아도 굉장히 어두운 색깔을 띄는 사람이다
담배를 피우러 마당에 나왔는데
마침 무뚝뚝한 J씨가 자리를 차지 하고 앉아 있다

" 여기저기 여행 많이 다니면 좋긴 하겠지만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면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꺼 같아 "

시니컬한 말투로 J씨는 나에게 처음 말을 던진다

뭐, 딱히 틀린말은 아니기에 반박하지 않았다
J씨는 유난히 은색캔에 담긴 코카콜라 라이트를 좋아했다
맥주처럼 시도때도 없이 들이킨다

심심해 보이는 J씨에게 시내 구경이나 가자고 제안했다

 


산티아고 외곽에 백화점이 가득한 쇼핑지구가 있다
역시 칠레는 풍요로운 나라임에 틀림없다
맘에 드는 모자가 있어서 하나 구입했다
제법 잘 어울린다 ㅋ

새 모자를 쓰고 한껏 들뜬 나의 기분과는 상관없이
콜라 한 잔을 앞에 둔 J씨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하루 종일 담담한 표정의 J씨...
아니 딱 한번 미소를 띈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딸 아이가 좋아하는 인형들을 산다고 했을때...

어두운 J씨 이야기의 끝은 왠지 모르게 죽음을 향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두서없는 장황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가슴이 먹먹해졌다

내가 J씨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거라곤
그저 그의 두서없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거려주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다음날 J씨는 홀연히 사라졌다


" 규형아, 한국에 가면 형이 좋은 여자 하나 소개 시켜 줄테니까 한번 만나 볼래? "

J씨가 사라지고 나서야 알았다
그 좋은 여자란 J씨의 부인이라는 걸...


J씨는 사라졌지만
내 가슴의 먹먹함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딸 아이가 좋아한다는 인형들을 안고
부디 가족의 품으로 무사히 돌아갔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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