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Q. 세상의 끝과 시작




지구 땅끝 마을이라 불리우는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 마을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바릴로체에서 깔라빠떼 이동 구간도 물론 만만치 않았지만
우수아이아 이동 구간이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건
몇 번씩이나 버스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깔라빠떼에서 다이렉트로 우수아이아까지 이동하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리오 가제고스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 타야한다
먼저 새벽 3시에 깔라빠떼를 출발해 리오 가제고스에서 한 시간 반 대기 후 환승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리오 가제고스에서 우수아이아 이동 구간 중 칠레 국경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중간에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출국 신고와  칠레 국경에서 입국 신고를 해야한다


버스를 선적한 배는 칠레 국기를 펄럭이며
바다를 건너 다시 아르헨티나 국경을 향한다
이제 다시 칠레 국경에서 출국 신고를 하고
아르헨티나 국경에서 입국 신고를 해야 하는
엄청난 번거러움을 반복해야 한다
출입국 신고때마다 모든 가방과 짐은 세관 검사를 받아야 하는건 두 말할 필요도 없다
 

귀찮아서 미칠 것 같다...입을 다물 힘 조차 사라진다
나방이는 그래도 조금 꿈틀거릴 힘이 남아 있나보다
턱받이 까지 완벽한 조화를 이루다니 이건 중증환자 같다...-_-




저녁이 되어서야 우수아이아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몇 일 머물곳은 다빈이네 라는 한인 숙소다



3대가 우수아이아에 모여 살고 있는 다빈이네는
1층은 숙소로 사용하고
2,3층은 가족들이 사용하고 있다

오는 길이 쉽지 않아 우수아이아에 머무는 여행객들은 다른 도시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한다
머무는 내내 다른 여행객 코빼기도 못 봤다...
4인용 도미토리와 부엌까지 나방이와 내가 독차지 한다

주인 아주머니는 달갑지 않은 표정과 목소리를 우리를 맞이 했다

" 오늘부터 연말이라 다다음날 까진 가게들이 문을 닫을텐데, 밥 해먹을 건 있어요? " 

물론 없다
내일 식량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저녁 먹을 부식거리도 없다

" 그럼 몇 일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쌀이랑 상추랑 고추장을 줄께요 "

(상추??고추장?? ⊙_⊙ 꼴깍~)

" 여행객들이 온다고 말만하고 취소하는 경우가 많아서 두분도 안오실줄 알았는데 용케 오셨네~ "

마치 안오길 바랬던 모양이다...
그도 그럴것이 가족끼리 오붓하게 연말연초를 보내고 싶었을터이다
이런 날 불쑥 찾아온 불청객이 그닥 반가울리는 없다
그래도 서운하다...ㅠ_ㅠ

아주머니가 주신 밥과 고기 조금을 상추에 싸서 먹는다
고기쯤 없어도 고추장과 상추만으로도 훌륭한 쌈밥정식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입맛이 싸구려 빈티지로 변해간다
(아니다...난 원래 입맛이 조금 싸구려였다)



다빈이네 집은 우수아이아의 바다와 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
한적한 어촌마을의 풍경이다


저녁을 챙겨먹고 아랫마을까지 산책을 가기로 한다
선착장 앞에 이곳이 세상의 끝(Fin del mundo)이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물론 엄밀히 말하면 이곳이 세상의 끝은 아니다
우수아이아에서 배를 타고 나가면 진정한 세상의 끝인 남극이 있다 


꽤 늦은 저녁시간인데도 대낮처럼 환한 우수아이아...
이곳에선 밤 12시가 되어야 해가 지고
새벽3시가 되면 다시 해가 뜬다
아주머니 말로는 깜깜한 밤이 없다고 한다
미묘한 차이의 백야현상...

백야현상만 빼면 이곳이 정말 지구의 끝인지 잘 모르겠다
그저 이곳도 다른 어느 마을과 마찬가지로 평화롭고 또 평화롭다


유난히도 많은 눈물을 흘렸던 2009년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눈물을 흘린다고 반드시 슬픔의 결말이 오는 것은 아니였다

우수아이아 마을이 가르쳐 준 한 가지 사실은
세상의 끝은 세상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래 난 어쩌면 세상의 끝을 보기 위해 죽어라 이곳에 달려온게 아니라
세상의 시작을 보기 위해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

세상의 끝은 세상의 시작이 듯
외로움의 끝은 사랑의 시작이 되고
슬픔의 끝은 기쁨의 시작이 되길
2009년의 끝을 보내고 2010년의 시작을 기다리며
주문을 외워보자!

End of the world beginning of ever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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