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Q. 그들이 후지여관을 찾는 이유



다음날 버스를 타고 모레노 빙하에 다녀오기로 한다
모레노 빙하는 남미 여행객들에게 페루의 마추픽추, 볼리비아의 우유니 사막을 제치고
가장 가보고 싶은 남미 여행지 1위를 차지 한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성수기인 12월부터는 깔라빠떼 버스터미널에서 하루 전 왕복 버스표를 예매하는건 필수 사항이다
 모레노 빙하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Cal-Tur 버스가 유일하다



깔라빠떼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거리에 모레노 빙하가 있다
출발하자마자 나방이는 잠이 든다
전날 36시간의 여독이 아직 풀리지 않은 모양이다 
자세히 보니 나름 여자라고 속눈썹이 참 길다ㅋㅋㅋ


드디어 모레노 빙하에 도착~
입구에 도착하면 버스기사가 보트 투어를 원하는 사람들을 선착장으로 안내해 준다
조금 비싼 가격이긴 하지만 빙하를 좀 더 가까운 곳에서 볼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다
난 패스~!


입구를 지나자마자 저 멀리 모레노 빙하가 보이기 시작한다
보트선착장을 출발한 보트도 보인다


전날 숙소에 한국인 여행객 한 명이 들어왔다
이 아이의 이름은 최.시.칠.
이름 한번 특이해서 좋다 ㅋㅋㅋ
배고플때 먹을려고 싸온 땅콩을 주섬주섬 꺼내고 있다
시칠이는 다람쥐마냥 무한반복 땅콩껍질까기 신공을 선보이며 열심히 땅콩을 까먹는다


땅콩을 까먹는 시칠이와는 대조적으로
옆 자리에선 버너까지 꺼내며 여유로운 커피 한잔을 곁들인 야외 브런치 타임~!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더욱 열심히 땅콩까기를 선보이는 시칠이
시칠이가 신기한지 자꾸 쳐다보는 옆자리 여행객들...

난 시칠이와 조금 멀리 떨어져 앉기로 한다...

"내 맘 이해하지, 시칠아?"


모레노 빙하를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첫 번째 발코니
다행히 사람들이 붐비지 않아서 사진 찍는데 오래 기다리진 않았다

모레노 빙하는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빠따고니아 지역을 덮고 있는 광대한 빙하대륙 중 일부이다
수만년 동안 안데스 산맥으로 부터 흘러내려오는 만년설들이 만든 작품이다


저 멀리 빙하의 끝까지 보고 싶은 욕심에 바둥거리며 발코니를 밟고 올라선다
헛딛으면 차가운 빙하물로 추락이다...
괜히 깔라빠떼 지역신문 1면을 장식하지 않도록 조심하자...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왔다고 빙하의 끝이 보일거라 생각했던 내가 귀엽기까지 하다
올라온 김에 멋진 포즈로 사진이나 찍자...
근데 저건 초등학교 운동회때 많이 하던 기계 체조 포즈 같다...
타이타닉의 느낌을 기대 했건만

"I'm Flying~"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쳐다본다
이번엔 시칠이가 나와의 거리를 두는 것 같다... 1승1패다...

사진을 찍고 내려오자
멀리서 시칠이가 다가온다

" 형 땅콩 좀 드실래요? "

배가 부른 모양이다.
받아든 비닐봉지엔 땅콩껍질이 가득하다.
어느게 깐땅콩껍질이고 어느게 안깐땅콩껍질인지 전혀 알 수 없다...

" 잘 찾아보면 안깐땅콩 많아여~ "

" 응, 그래 고마워...잘 찾아볼께...-_-; "

시칠이는 그냥 쓰레기 봉지를 나한테 주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젠장 1승2패다...


시칠이가 준 땅콩을 먹고 힘이 났다
견과류가 열량이 많이 포함된 탓 인지 몸도 아까보다 따뜻해졌다 ㅋㅋㅋ
이번엔 아예 난간위로 올라선다


사진을 찍어달라고 시칠이를 찾았지만 시칠이가 보이질 않는다...방금전까지 있었는데...-_-;;;


보트투어를 다녀온 다카하시 군과 만났다
원래 더 일찍 만나서 같이 움직이기로 했는데
서로 길이 엇갈렸나보다
혼자 심심했다며 반가워하는 다카하시 군~!

어느샌가 나타난 시칠이에게 카메라를 맡겼다


모레노 빙하를 볼 수 있는 포인트는 여러 군데가 있다
그 중에서 마지막 전망대에 도착~!
이쪽의 빙하들은 흙이 많이 묻어 있어서 이뿌진 않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이곳 빙하들은 조금씩 앞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루에 2m 정도 앞쪽으로 밀려나오면서 빙하들이 떨어져 나간다
그래서 보트투어로 접근할때도 빙하와 가까운 곳까지는 접근할 수 없다
접근했다가 빙하가 우두둑 떨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황천길이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빙하를 계속 바라보고 있으면 가끔 천둥같은 소리를 내며 빙하가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목격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더 멋지게 떨어지는 빙하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모레노 빙하에서 늦지 않은 시간 숙소로 돌아왔다
각자 한가지씩 반찬을 만들어 내놓기로 하고 일본 투숙객들과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한다



나름 구색을 갖춘 저녁 식탁이 금새 차려졌다


4명 정도 일본 투숙객들이 더 있었는데 몇 명은 접시닦이 아르바이트 중이고
몇 명은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돌아올 모양이다

일본 친구들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듣게 된다
후지여관에 찾아오는 일본여행객들 사이에서는 이곳이 유명해진 여러가지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한국드라마 "미안하다사랑한다"를 볼 수 있기 때문이란다

주인 아주머니가 일본어 자막이 있는 한국드라마 DVD를 많이 가지고 계신데
이곳에 찾아왔던 여행객들이 남긴 후기 중

" 후지여관에 가면 꼭 미안하다 사랑한다 DVD를 다 보고 갈 것! "

이라는 댓글이 입소문을 타 
결국 이곳을 찾는 대부분의 일본 여행객들은 댓글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중인 것 같다 

한국 여행객들에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일 것이다
그까지꺼 자기 집에서 다운받아서 봐도 될걸 굳이 거기가서 보나? 하고 말이다
 
여행을 하다 한국 여행객들과 일본 여행객들을 가끔 만나게 되는데
여행 스타일이 조금은 다르다는 걸 느끼게 된다

일단 한국 여행객들은 일정이 참으로 참으로 빡빡하다
대부분의 도시는 하루 이틀이면 다 소화를 하고
새벽일찍 나가서 밤 늦게까지 돌아다녀야 한다
그리고 바로 이동...

이야기를 나누고 생각을 나눌 여유조차 없다
조금 여유가 나면 인터넷에 매달리거나
사진 정리하는데 열중이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 여행객들은 일정이 여유롭다
지나칠 수 있는 작은 도시지만
마음에 맞으면 일주일정도 머물다 가는 경우가 많다
딱히 볼거리가 없고
딱히 할일이 없더라도
여유로운 자기만의 시간을 만끽하는 걸 즐긴다

우리의 여행 패러다임도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끔씩은 버리고 놓치기도 할 줄 알아야 하며
아쉬움과 미련을 여행의 경험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마인드...

한국여행객들을 만나면
 얼마나 많은 장소를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그리고 얼마의 돈을 가지고
여행을 하는가를 제일 궁금해 하고 제일 자랑거리가 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상대방이 그리고 자기 자신이 여행을 즐기고 있는지에 대한
사소하지만 중요한 질문과 답변을 언제나 생략하고 만다

그래서 그럴까?
우연히 처음 마주하게 되는 두 나라 여행객들의 얼굴을 보면
느낌이 정말 다르다

하나는 여행에 쩔어 지친 얼굴...
하나는 여행을 즐기는 여유로운 얼굴...
난 이들에게 어떤 얼굴로 비춰지고 있을지 궁금해지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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